AI 윤리

한국판 AI 윤리법 제정 논의는 어디까지 왔는가?

dailyonenews 2025. 7. 2. 21:23

 인공지능 기술이 확산되면서, ‘윤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입법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AI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 가치, 권리와 직접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본질적 기술이다. 이미 의료, 교육, 금융,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가 의사결정을 보조하거나 대체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편향, 차별, 개인정보 침해, 책임 불분명과 같은 윤리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AI 기술을 법적으로 규율하고,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윤리적 기준을 명확히 하는 ‘AI 윤리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역시 2020년 이후부터 AI 기본법, AI 윤리 가이드라인, 인공지능 신뢰기반 조성 정책 등을 통해 윤리 입법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법률’이라는 실질적 제도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금부터 한국 정부와 국회, 민간 주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AI 윤리 입법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며, 현재 어떤 수준까지 도달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국판 AI 윤리법 제정 논의

 

 

 한국 정부는 AI 윤리 입법을 어떻게 준비해왔는가?

한국 정부는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도로 ‘인공지능 윤리 기준’을 발표하면서 AI 기술 개발의 윤리적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후 2020년부터는 디지털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프레임워크를 수립했고, 공공부문에 AI를 도입할 때 반드시 윤리 기준을 적용하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2021년에는 ‘인공지능 기본법’ 제정을 위한 초안이 다듬어졌으며, AI 관련 데이터 윤리, 알고리즘 편향 방지, 개발자의 책임 등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확장되었다. 2023년에는 ‘AI 윤리 법제화 로드맵’이 공개되어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AI 윤리 기준을 법제화하겠다는 정부 계획이 발표되었고, 현재는 산업계와 학계,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특히 국무총리 산하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는 AI 기술 활용 시 ‘윤리 내재화’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대부분 정책적 선언 또는 가이드라인에 머무르고 있으며, 법률 제정으로 연결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회는 AI 윤리법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국회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AI 관련 법안 발의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지만, 대부분이 포괄적 기본법 형태이며, 윤리 문제를 별도로 다룬 입법은 드문 편이다. 대표적으로 2021년부터 발의된 ‘인공지능 기본법안’은 AI 개발과 활용의 윤리 원칙, 개인정보 보호, 안전성 확보, 인권 보장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 구조 자체가 지나치게 추상적이며, ‘책임 주체의 명확화’나 ‘윤리 위반 시 제재 기준’ 같은 구체 조항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24년에는 일부 의원이 ‘AI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 법안’을 별도로 발의하여 알고리즘 검증 및 외부 감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아직 심사조차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여러 상임위에서 중복 발의된 법안들이 통합 조율되지 않은 채 계류 중이라, 입법화 과정은 지연되고 있다. 정리하자면, 국회는 AI 윤리 입법에 대해 개념적으로는 동의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법률 구조나 입법 추진력은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해외 AI 윤리법과의 비교를 통해 본 한국의 현재 위치

 

한국의 AI 윤리법 논의는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해외는 이미 구체적인 입법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은 2024년 ‘AI 법(AI Act)’을 통과시켜,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한 법적 정의, 인증 절차, 책임 기준, 제재 조항 등을 명문화했다. 이 법은 윤리 기준을 넘어서 실제 규제 체계를 구성했으며, 기업들이 AI 시스템을 출시하려면 사전 위험 평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미국도 아직 연방 차원의 포괄적 AI 법은 없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2023년 ‘AI 행정명령’을 통해 윤리 기준, 알고리즘 투명성, 데이터 보안 등을 연방기관에 의무화했으며, 각 주에서는 독립적인 AI 관련 법률을 마련 중이다. 일본 역시 2024년부터 AI 윤리 정책을 산업 규제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이며, 특히 AI 개발자에 대한 윤리 인증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윤리를 법적 ‘규제’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으며,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입법의 속도와 구체성 모두에서 뒤처지고 있는 현실이다.

 

 AI 윤리법은 기술을 막는 규제가 아니라, 사회 신뢰를 지키는 기반이다

AI 윤리법의 제정은 기술을 억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이 사회로부터 신뢰받고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은 정부 차원의 윤리 기준 정립과 로드맵 수립, 국회의 기본법 발의, 민간의 자율 기준 개발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질적 입법’이라는 결과물은 아직 도출되지 않았다. 국제 사회가 빠르게 윤리 규제 체계를 제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이제는 선언을 넘어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윤리 법제도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AI 기술이 인간의 권리와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윤리 기준은 단순한 철학이 아닌 제도적 안전장치로 기능해야 한다. AI 윤리법은 한국이 기술 강국을 넘어 신뢰 가능한 기술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