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윤리적 기준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가?
인간의 가치 판단 없이 작동하는 AI는 가능한가, 바람직한가?
AI는 인간의 사고와 결정을 모방하도록 설계된 기술이다. 문제 해결, 정보 분석, 예측 기능 등 많은 부분에서 AI는 이미 인간 수준의 또는 그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고도화되며 마주한 새로운 질문은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판단의 문제다. 의료에서의 생명 우선순위 결정, 자율주행차 사고 회피 판단, 자동화된 재판 분석이나 대출 심사 등 도덕적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AI가 인간처럼 윤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GPT 같은 생성형 AI나 자율형 로봇은 특정 상황에서 사람보다 먼저 반응하거나 선택을 내리기도 하며, 이 선택이 생명, 존엄, 인권과 직결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AI가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기술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는지, 그 한계와 위험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결국 윤리적 주체로서 AI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고찰한다.
AI의 윤리 판단 메커니즘 – 기술적으로 가능한가?
AI가 윤리적 결정을 내리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사전 정의된 규칙(rule-based), 데이터 기반의 학습(data-driven), 또는 강화학습을 통한 가치 보정(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구현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는 사고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시뮬레이션하며, 특정 윤리 원칙(예: 더 많은 생명을 살릴 것)을 따르도록 프로그래밍된다. 이른바 ‘윤리 알고리즘(Ethical AI)’이라고 불리는 접근법은 MIT의 ‘Moral Machine’ 프로젝트 등에서 연구되었고, 최근에는 딥러닝 모델에 사전 정의된 윤리 기준 또는 사용자 피드백 기반의 정서 분석을 결합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윤리적 사고’라기보다는 윤리적 결과를 예측하거나 모방하는 기능에 가깝다. AI는 지금까지도 옳고 그름, 공정과 차별, 책임과 자유 같은 개념을 정의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없다. 인간의 윤리 판단은 맥락, 감정, 역사, 문화, 직관 등 복합적인 요소로 구성되는데, AI는 현재 이 중 일부만을 계산적으로 모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윤리를 판단할 수 있는 AI”란 주어진 윤리적 시나리오에 대해 가장 ‘합리적’이거나 ‘예측 가능한’ 반응을 도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AI의 윤리 판단에 내재된 위험성과 한계
AI가 윤리 판단을 ‘스스로’ 내린다는 주장은 현실에서 여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윤리 개념 자체의 다양성과 유동성이다. 문화에 따라, 시대에 따라, 개인에 따라 윤리 기준은 다르게 해석되며, 정답이 하나로 고정된 도덕적 상황은 거의 없다. 하지만 AI는 정량적 기준이 있어야 작동하기 때문에, 복잡한 윤리 문제를 단순한 수치나 분류로 환원해 판단하게 된다. 이는 본질적으로 윤리 판단을 ‘기술화’하거나 ‘기계화’하는 오류를 낳는다. 둘째, AI 윤리 판단의 책임 소재 문제다. 예컨대 의료 AI가 생존 가능성이 낮은 환자에게 자원을 할당하지 않았을 때, 그 결정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시스템 개발자, 운영자, 혹은 AI 자신인가? 현재 법적·도덕적 주체가 아닌 AI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판단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지만, 판단 권한은 점점 기술로 넘어가고 있는 구조가 문제다. 셋째, 알고리즘 편향과 불투명성이다. AI는 훈련된 데이터에 따라 판단하므로, 윤리적 편향(bias)이나 부적절한 기준이 반복 학습되면, 오히려 부정의한 결과를 정당화할 수도 있다. 이처럼 AI가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고 해도, 그 판단의 의미와 맥락, 사회적 수용성은 여전히 인간의 판단 범주에 속해 있다.
윤리적 판단 AI의 개발 방향과 사회적 통제 방안
AI가 윤리 판단을 ‘시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면 반드시 사회적 통제와 책임 구조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윤리 판단이 요구되는 AI 시스템은 고위험군 기술로 분류하고, 인간의 판단 개입을 필수 요소로 명시해야 한다. ‘Human-in-the-loop’ 시스템은 AI의 판단이 최종 결정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을 보조하거나 검토받는 구조를 전제로 해야 한다. 둘째, 윤리적 AI를 개발할 때에는 투명한 알고리즘 설계,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 검증 가능성(Verifiability)이 보장되어야 하며, 다양한 사회적 가치 기준을 반영할 수 있도록 다문화·다계층 데이터를 포괄해야 한다. 셋째, AI 윤리 기준은 단순히 기술 내부에서 정의할 것이 아니라, 법, 철학, 인권, 종교 등 다양한 사회적 관점을 반영한 거버넌스 구조 하에 설계되어야 한다. 넷째, 윤리 판단을 수행하는 AI는 반드시 감시 가능한 책임 주체와 운영 구조를 동반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AI의 윤리 판단 기능이 포함된 기술에 대해 인증제, 가이드라인, 위험 평가제도 등을 마련하여 사회 전체의 수용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적 가능성과 사회적 정당성은 별개이며, AI의 윤리 판단은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와 인간의 철학적 선택으로 접근해야 한다.
AI의 윤리 판단 가능성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윤리를 기술에 담을 것인가다
AI가 윤리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부분적으로 가능하겠지만, 철학적으로, 사회적으로 그것이 바람직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기술의 진보가 곧 인간성의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AI가 도덕적 결정을 대신하는 순간, 우리는 윤리라는 인간 고유의 책임과 고민을 기술에게 외주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핵심은 “AI가 윤리를 판단할 수 있는가”보다, “인간이 어떤 윤리를 AI에 담고, 어떻게 통제하고 책임질 것인가”다. 윤리란 인간의 삶과 관계, 맥락과 감정, 역사와 공존의 산물이다. 그런 윤리를 기계에게 맡기는 순간, 우리는 인간다움의 본질을 되묻게 된다. AI가 윤리를 배우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윤리는 반드시 인간의 손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그 통제권도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